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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줌마의 수다] 강한 게 여자라지만

수도일보 2023. 1. 26. 16:49

이계숙 작가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고 콧물도 나는 게 아무래도 몸살감기가 걸린 것 같다. 친구들과 브런치 약속도 있는데 참 난감했다. 뜨거운 생강차를 좀 마시면 괜찮을까 싶어 끓이고 있는데 남편이 그냥 쉬는 게 어떻겠냐고 걱정스런 눈길로 묻는다. 그러나 이깟 일로 약속을 취소할 수 없었다. 생강차를 마시면서 주섬주섬 준비를 하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화들짝 놀란다.

“설마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감기가 다른 사람한테 금방 전염되는 것 알지? 혼자나 걸리고 말지 누구한테 옮기려고 지금 나간다는 거야? 오늘 브런치에 참석자도 많다면서…"

너무 놀라서 나는 들고 있던 컵을 떨어트릴 뻔 했다. 그럼 집에서 쉬라고 한 건 다른 사람한테 감기 옮길까봐였어?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고? 괘씸하고 서운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생각한 바를 곧이곧대로 말하는 성격을 잘 아는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솔직하고 꾸며서 말할 줄 모르는 것도 문제이다. 가끔은 상대방의 비위도 맞춰주고 거짓말도 해야 부부관계, 나아가서는 인간관계가 윤택해지련만 남편은 그걸 절대 할 줄 모른다.

미국잡지에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남편이 부인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을 몇 개 순위에 매겨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첫째가 아내가 자신의 옷차림에 대한 의견을 물어 오더라도 절대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지 말 것(이를테면 아내가 이 치마를 입으니 배가 나온 것 같아 보이냐고 물을 때 설사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곧이 곧대로 대답하지 말 것)

둘째가 아내 친정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말 것. 설령 아내가 자기 친정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털어 놓더라도 그냥 듣고만 있지 맞장구를 치지 말 것.

세 번째가 행여라도 아내에게 직접 돈 벌어 오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내가 먼저 가계에 도움이되겠다며 직장생활을 하겠다 하더라도 행여라도 기쁜 내색을 보이지 말고 일단은 말리는 척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한 지인은 지금도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고 한다. 30여년전,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며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단다. 육아와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늘 힘에 부치던 차에 남편에게 슬쩍 물었다. 아이들 키울 동안만이라도 가게를 좀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열면 안되겠냐고. 그랬더니 지금 들어가는 은행 적금은 어떡하냐며 펄쩍 뛰더란다.

“적금 들어가는 것 누가 모르고 그런 말 했겠어? 그만 두라고 한다고 그만 둘 나도 아니지. 하도 힘드니까 그냥 위로라도 받으려고 한 마디 해 본 건데 진짜 속 보이더군."

빈말이라도 '그래, 그렇게 힘들면 당장 그만 둬. 미용실 문 닫는다고 금방 굶어 죽기나 하겠어?' 라고 못하는 남편한테서 만정이 떨어지더라고 했다.

예전에 나도 가끔 직장을 그만 둘까보다고 남편을 슬쩍 떠보았었다. 진짜 그만 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마누라가 벌어 오는 돈에 얼마나 연연하는지 알고 싶은 생각에.

”알아서 하셔. 내가 그만 두란다고 그만 둘 것도 아닌 쇠고집에 묻기는 왜 물어?"

이왕이면 듣기좋게 그동안 직장다니고 살림한다고 힘들었으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좀 쉬는 것도 좋지하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보면 남자들이 참 지혜롭지 못한 것 같다. 말로서라도 조금만 아내의 비위를 맞춰 주고 기쁘게 해주면 본인의 신상이 편할 텐데 말이다.

한 여성은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남편을 꼼짝 못하게 들이대는 레퍼토리가 있다고 했다. 새 차를 산 후 사고가 났는데 남편이 아내의 안부보다 차의 상태를 먼저 물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란다. 또 자기 죽으면 재혼할 거냐고 물었더니 '일단 죽어 봐야 알지, 지금 어떻게 아냐‘ 고 남편이 대답한 것을 가지고 두고두고 공격한단다. ‘죽은 후에야 재혼을 하든 말든 알게 뭐냐. 그냥 듣기 좋게 당신 생각만 하고 살지, 재혼은 왜 하냐고 대답해 주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게 그녀가 섭섭한 이유라고 했다.

내 남편에게도 똑같이 물어보았더니 이 인간 왈.

"1주일만 울고나서 다른 여자 찾으러 나설란다."

아이고, 고맙기도 해라. 일 주일 씩이나 울어 주다니! 강한 것이 여성이라 했던가.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다치기 쉬운 것도 여성의 마음이지 싶다. 남편이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 여성의 마음, 유리그릇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