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
봄을 맞아 집 공사를 했다. 앞뜰에 자리 잡고 있던 큰 나무를 베어낸 후 그 자리에 계단을 만들고 화초를 심었다. 앞뜰 전체에 있던 잔디를 걷어내고 걷어낸 자리에 자갈을 깔고 분수도 세웠다. 그리고 집 안팍페인트를 다시 했다.
역시 돈을 좀 들이길 잘했다. 보름 만에 근사한 집으로 바뀌었다. 페인트는 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샘플만 보고 색깔을 골라야 했기에. 완성 후에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우리 집 가구랑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지. 막상 끝나고 보니 괜한 기우였다. 병원처럼 썰렁한 느낌을 주던 집안 분위기가 따뜻하고 아늑하게 변했다.
앞뜰도 남편은 일절 관여하지 않고 나 혼자 디자인해서 조경사에게 맡겼는데 이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구경할 만큼 멋지게 나왔다. 한 이웃은 우리집하고 똑같이 앞뜰을 꾸며야겠다면서 조경사 연락처를 달라고 할 정도였다. 내 미적(美的)감각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고 남편도 감탄해 마지않는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디자이너 쪽으로 공부를 해 보란다.
자랑 잘하는 내가 가만 있을 수 있나. 저녁 해준다는 핑계로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집을 둘러본 사람들이 여자와 집은 돈을 들여야 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다, 여지껏 본 집 중 촤고다며 입모아 덕담을 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다르게 말했다.
“집이란 그냥 잠만 자는 곳인데 왜 자꾸 돈을 처들이는지(그는 분명히 그렇게 표현했다)모르겠네. 몇 년 전에도 바닥이랑 부엌 카운터탑을 교체하지 않았어? 나라면 현찰을 가지고 있든지 투자를 해서 돈을 더 불리겠다….”
나는 대답했다. 바깥출입을 잘 안 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내게 집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가 또 말했다. 그렇다 해도 집에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 난 절대 집엔 돈 안 들여. 비 안 새는 지붕하고 바람 막을 벽만 성하면 되지…
그 지인으로 인해 크게 느낀 게 있었다. 부부에겐 인생의 중점을 어디에다 두는가가, 즉 가치관이 같은 게 참 중요하구나 하는 것.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그게 맞는구나 하는 것. 내 남편이 그 지인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집에 돈 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거나 근검절약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공사를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직도 멀쩡한 것들을 왜 갈아치워? 여편네가 어떻게든 돈 쓸 궁리만 하고 앉았네하는 남편이었다면 말이다. 따라서 나는 불만과 불평이 넘쳤겠지. 그러나 이번 공사를 함에 있어 우리는 일체 이견이 없었다. 아등바등 아끼기보다는, 여행하기보다는, 투자를 해 돈을 불리기보다는 오늘을 누리고 즐기는 일이 더 큰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게 남편과 나의 일치한 생각이었다. 집을 잘 꾸미는 일이 우리 삶에 있어 제일 우선이라는.
남녀가 ‘부부’란 이름으로 만나 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많은 대답이 있을 것이다. 대화가 통해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취향이 같아야 하고 경제 능력이 있어야 하고 등등. 한 할배한테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코드’가 맞아야 할 것 같다고. 코드라.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인데 참 막연하고 광범위하다. 코드에는 위에 말한 성격, 취향에다 취미, 습관, 입맛, 하다못해 취침과기상 시간까지 다 포함되는 것 같으니까.
어쨌든 맞는 말이다. 부부는 반대로 만나야 잘 산다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반대로 만나 잘 사는 부부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한다. 할배 말대로 코드가 잘 맞아야 한다. 그중 가장 잘 맞아야 하는 것은 인생의 우선 순위 코드. 취미생활이야 따로따로 할 수 있고 취향이나 입맛이야 서로 존중하고 절충하면서 맞추어간다지만 인생의 코드가 다르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지에서 봉사하며 사는 부부들을 잡지에서 종종 본다. 우리가 보기엔 고생을 사서 한다 싶은데 정작 그들은 무척 행복하고 보람에 차 있다. 왜냐면 그들은 ‘남을 위한 삶’이란 코드가 맞았기에. 그런 삶을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었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부부의 인생 우선 순위 코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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