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류근원의 세상만사] 커피믹스를 마시다

수도일보 2022. 11. 10. 17:36

동화작가 류근원.

‘봉화 광산의 기적, 기적의 생환, 221시간 만의 기적, 밥처럼 먹은 커피믹스’ 등 온갖 찬사들이 쏟아졌다. 고급 커피에 밀려 주방 수납장 구석으로 밀려났던 커피믹스를 꺼낸다. 그들이 밥처럼 마셨다는 커피. 그 커피를 마시면서 먼지만큼이라도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까?

10월 26일 봉화 광산이 무너지며 두 명의 광부가 매몰되었다. 쉽게 구조되리라던 작업은 악전고투의 연속, 음습한 갱도의 벽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으리라. 불굴의 의지로 사투를 벌이다 이들은 11월 4일 밤 구조 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지상으로 걸어 나왔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오는 그 모습은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사고 발생 221시간 만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광산에서 2개월 전 비슷한 매몰 사고가 터졌다. 지난 8월 29일 지하갱도에서 일하던 2명이 추락 매몰되었다. 한 명은 탈출했지만 다른 한 명은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미리 대비했더라면 이번 참사는 생기지 않았을 인재 사고였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비닐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커피믹스와 갱도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먹으며 버텼다. 구조대의 발파 소리는 한 줄기 희망의 소리였으리라. 그 소리를 들으며 괭이로 10미터가량 암석을 파내 구조 시간을 앞당겼다. 살기 위한 몸부림을 어떤 말과 글로써 표현 못 할 것이다. 구조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고 있지만, 트라우마와 정신적 후유증은 엄청날 것이다. 몸과 마음이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올수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광산 매몰 참사는 끊이지 않았다. 1985년 갱도가 붕괴해 10명이 매몰됐으나 45시간 만에 전원 구조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1992년 막장 붕괴로 6명이 숨진 정선 정동광업소, 1996년 15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 간 강원도 태백 통보광업소 참사….

참사 때마다 살아나온 광부들은 영웅처럼 대접받았지만, 그때뿐이었다. 모든 게 말만 앞세운 대책, 우둔한 정치권 때문이었다.

2010년 8월, 칠레에서 영화 같은 광산 붕괴사고가 터졌다. 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광산 붕괴사고로 지하 700m 아래 33명이 매몰되었다. 그들은 무려 69일 만에 구조되었다. 칠레 정부는 그들을 위한 각종 대책을 발표했다. 그 대책대로라면 지금쯤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고 후유증으로 심리적‧육체적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등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치권도 칠레 정부와 도긴개긴이다. 언제나 사고 후 땜질 처방식 대책은 어느 날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하게 되어 있다. 국회는 정신 차려야 한다. 정쟁만 할 줄 아는 국회가 민생을 정말 생각한다면, 치밀하고 안전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은 본격 수사 중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생명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이다.

커피믹스를 마신다. 221시간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숨소리가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