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마당] 폐가

수도일보 2023. 4. 18. 10:00

이오장 시인

우리는 그랬다. 농사를 지으며 한 집안이 모여 옹기종기 다정하게 살았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죽으라고 흙을 일구며 살았다. 집집마다 대가족으로 증손자가 있는 집이 많을 정도로 다복했다. 굶어도 함께 굶고 일도 함께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가난하다고 실망하지 않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다투지도 않은 그런 행복을 누렸다. 사람의 행복지수는 많이 가질수록 낮다. 오히려 가난한 지역에서 최고의 행복지수가 나왔다. 그것을 보면 만족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인 것이 증명된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가 기본이다. 농토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민족이었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었다. 공장지대가 늘어나고 점차 농토가 사라졌으며 농촌인구는 도시로 집중되었다. 이것은 행인가 불인가를 따질 사이도 없이 변화를 가져와 사람들의 삶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폐가는 그래서 농촌지역에 많다. 김구림 시인은 고향을 찾았다가 혼란에 빠졌다. 도시의 문물에 익숙해 있다가 회한에 젖어 찾은 고향은 온통 폐가로 덮여 있고 쓰러진 집에는 잡풀이 무성하여 마당인지 토방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불행이 없다. 기억하는 것을 강제로 지울 수가 없는데,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이런 변화는 무엇인가.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여 어른으로 도시에 진출한 자기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시원하고 단말마(斷末摩)를 내지르고 싶지만 속에서 윙윙거리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해 멍하니 서서 좁아진 골목으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