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
산더미같은 우편물 속에 캘리포니아주 경찰국에서 온 기부금 요청서가 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체크를 썼다. 백불. 나는 매년 경찰국에 기부금을 보낸다.
오래 전일이었다. 외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강아지가 쫄래쫄래 따라 나오길래 냉큼 차에 태웠다. 날씨가 좋기에 차 지붕을 열고 운전하기로 했다. 두껑 열린 빨간 스포츠 카에 하얀 강아지,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카락.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남들한테 얼마나 멋있게 보일까 스스로 도취하며(그래봤자 다 늙은 할매지만)신나게 운전을 하고 한 5마일 쯤 갔을까. 어머나, 이게 웬일! 경찰차 한 대가 웽~ 사이렌을 울리며 내 차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를 따라오는 줄도 몰랐다. 운전솜씨가 젬병이라서 항상 제한속도나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과속이나 별다른 위반을 않았기에 설마 나를 잡으러 오랴, 차를 세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미러로 보니 경찰이 연신 내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길 가로 멈춰 서라고. 의아했지만 어쨌든 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경찰차도 내 뒤를 따라 붙어 멈추더니 곧 키가 장대만한 경찰관이 내렸다. 그리고 내 차 곁으로 걸어 왔다.
“무슨 일인데요?”
나는 당당하게 물었다. 길가는 선량한 시민을 아무 이유없이 잡을 수 있냐는 항의가 다분히 담긴 어조로. 짙은 색 선글라스로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경찰관은 그때까지 내 팔에 안겨 밖을 내다보고 있던 강아지를 가리키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 강아지의 운전 면허증를 보여 주시오.”
뭣이라? 강아지 운전 면허증?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나는 특유의 유머 기질을 발휘해 ‘안그래도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시험을 쳤는데 이 강아지가 하도 띨띨해서 벌써 두 번씩이나 떨어졌단다. 지금 세 번째 시험을 준비중이다’ 고 응수했다. 내 말에 선글라스에 반쯤은 가려진 경찰관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가 말했다.
“그래요? 운전은 반드시 운전면허증이 있는 사람만 하게 돼 있는데 운전 면허증도 없는 강아지가 운전석에 탔으니 딱지를 떼야겠소.”
아뿔사,이거였구나! 갑자기 가슴이 와랑와랑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단 한번도 위법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강아지의 운전석 탑승. 이상하게 우리 강아지는 내 차에 타기만 하면 반드시 내 무릎으로 올라 왔다. 그리고는 두 다리는 내 무릎에 놓고 두 앞 발은 핸들을 잡은 내 왼쪽팔에 걸친 채 바깥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강아지를 팔에 걸친 채 운전하는 게 불편은 했지만 항상 집안에만 갇혀 있는 강아지가 얼마나 바깥 풍경을 보고 싶으면 그럴까 싶어 그동안 가만두었던 것이다.
“다른 법규를 위반한 것도 아니고 강아지를 무릎에 앉혔다고 딱지를 떼는 건 너무한 것 아녜요?”
풀이 팍 죽은 나는 더듬더듬 말했다. 딱지를 뗄 때 떼더라도 일단은 사정이라도 한번 해야될 것 같았기에. 그러나 단호하게 ‘노’하는 경찰관. 얼음같이 차가운 태도에 체념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울 것 같은 심정으로 경찰관이 요구하는 면허증과 보험증서를 주섬주섬 지갑에서 꺼냈다. 그때였다. 경찰관의 눈이 차 창문 구석에 붙은 스티커를 발견한 것은. 아는 사람이 경찰국에 기부금을 몇 십불 냈더니 경찰 마크가 그려진 스티커가 우송돼왔다며 주길래 무심코 차창 구석에 붙혀 놓은 거였다. 경직되어 있던 경찰관의 얼굴에 약간 미소가 서린다 싶더니 ‘다음부터는 절대 강아지를 운전석에 태우고 다니지 마시오’라는 주의와 함께 나를 보내주었다.
그 뒤부터는 절대 강아지를 무릎에 태우고 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공짜로 얻은 스티커로 위기를 모면한 게 마음 편치 않아서 매년 기부금을 보낸다. 기부금 보낸 후에 제공되는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경찰관에게 붙잡히는 일이 생기더라도 좀 잘 봐달라는 애교성이며 요즘 땅에 떨어진 경찰들의 사기가 좀 올라갔으면 하는 이유도 있다.
몇년 전 부터 미국 전역으로 퍼진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경찰관들을 살인마로 취급하는 풍조가 생겨 났다. 흑인 생명이 중요하면 범죄를 안 저지르면 될 것 아닌가. 메뉴얼에 의해서 범죄자들을 제압하다보면 이런저런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인데. 매우 안전하던 우리동네도 걸핏하면 자동차 유리가 깨지고 도둑맞는 집이 늘고있다. 경찰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들의 활동을 축소하게 만든 대가다. 내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 줄 사람이 바로 경찰관인데.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마당] 삶 굽어본 세상에서 (0) | 2023.04.10 |
---|---|
[특별기고] 산혁신클러스터 구미 유치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0) | 2023.04.10 |
[류근원의 세상만사] 나를 움직인 진실 세상을 움직일 신문 (0) | 2023.04.05 |
[시마당] 벚꽃 (1) | 2023.04.03 |
[편집국장 Pic] 해법 수학과 수학의 정석 (0) | 2023.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