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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Pic] 해법 수학과 수학의 정석

수도일보 2023. 3. 30. 17:00

임성민 국장

정부가 약 4주 전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안을 발표했다.

해법안은 지난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우리 피해자들에게 우리 정부가 대신 배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즉시 부정적인 여론이 치솟았고 논란은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바로 이어진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도 그래서 시끄러웠고 이런 저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정 지지율은 다시 30%대로 내려앉았다. 야당이 이재명 리스크로 지지율 까먹기에 딱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을 무렵, 정부와 여당은 일본 리스크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번 해법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사그라들 줄 모르고 국정 지지율을 쉼 없이 갉아먹고 있을 무렵, 일본은 윤석열 정부가 걷고 있었던 살얼음판에 바위 하나를 투하하고 말았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의 수정 내용이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것이다.

지난 28일 일본 정부 검정을 통과한 초등학교 교과서는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통일했다. 또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징병, 강제동원의 강제성도 축소, 약화시켰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 양국 정상이 외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 목소리도 허공을 떠돌 수밖에 없다. 특히 독도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일종의 성역이다.

우선 우리 정부가 발표한 해법안만 보더라도 출발 자체가 어긋나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갈등 해소는 가해자의 진정 어린 반성과 그에 대한 피해자의 수용, 그리고 그 결과로 양측이 서로 화합하는 과정이라는 절대적 삼박자가 필요하다. 이번 정부의 해법은 이러한 가치와 진심을, 그리고 무엇보다 ‘정석’을 담아내지 못했고 국민들은 그 점을 아쉬워 했던 것이다.

국익의 측면에서 보자면, 과거의 일에서 벗어나 미래에 일본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것도 국익이지만, 우리 국민들과 피해자들이 일본을 사과를 수용하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일 역시 국익이다. 국익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죽어도 사과하기 싫다는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미래를 향한 대승적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이제 그만 과거의 일은 묻어두자’는 것과 ‘마지막 한 명까지라도 당시의 피해로 인해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명제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우리의 정서와 양심은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화를 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바랬던 ‘장단’을 맞춰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일본은 그럴 생각도 그렇게 할 실력도, 의지도 없었다고 봐야 한다.

한편, 이상한 ‘물 반 컵’ 비유를 들고나와 생소한 외교수사를 사용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제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일본이 남은 절반을 채워주기는커녕 물컵을 와락 쏟아버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라고 말한 박 장관은 독도와 강제징용, 임진왜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역사적 이해를 완벽하게 짓밟은 일본의 행위가 성의 있는 호응인지 답해야 할 차례가 됐다. 물론, 일본의 교과서 내용 문제가 강제징용 해법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뇌리에는 일본만 남는다. 우리는 (보상금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일본을 봐줬는데 일본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그들의 다음 세대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가르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해법 수학’이라는 책과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쌍벽을 이루었지만 조금은 더 많은 학생들이 ‘수학의 정석’을 선택한 것은 그 ‘정석’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자꾸 어긋난 해법을 들고 나와 정답을 맞추려 하니 삐걱거리기만 하는 건 아닐까? 일본과의 관계를 놓고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정석은 무엇일까? 우리의 외교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