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
나랑 친한 남자 의사가 있다. 그에 대한 공식적인 호칭은 ‘닥터 김’이다. 가끔 내 장난기가 도지면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럴 때마다 그는 펄쩍 뛰면서 생난리를 친다. 아저씨라는 호칭이 정말 싫다는 것이다. 그가 질색하는 게 무척 재밌다. 더욱더 소리 높여 아저씨, 아저씨라고 부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도 아니고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어때서 그럴까. 수틀리면 할배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벌써 손주를 둘이나 봤으니 할배라고 불러도 지나친 건 아니니까.
한국 사람들만큼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특히 ‘아줌마’나 ‘아저씨’라는 호칭에는 더더욱. 더 이상 총각, 처녀가 아니건만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리우는 걸 끔찍히 싫어한다. 언젠가는 남대문시장에서 결혼도 안 한 자신을 아줌마라 불렀다고 옷가게 주인과 대판 싸우는 여자를 보았다. 얼마전에는 아줌마라는 호칭때문에 지하철에서 칼부림이 났다고 한다.
호칭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민족인 걸 일찌감치 알았던 나는 중장년남자는 ‘선생님’, 중장년여자들은 ‘여사님’으로 다 통일해 부른다. 선생님이나 여사님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가 거의 없는 것 보면 아주 적절한 호칭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호칭으로 불리울까. 내가 호칭이 참 많은 사람이다. 이 기자, 이계숙 씨, 깨숙이,(‘깨숙이’는 삼십 몇 년전부터 할배들이 나를 칭한 호칭인데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그리고 이 작가와 작가님.
나는 호칭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뭐라고 날 부르든 전혀 개의치 않는데 그중에서 매우 거북하고 어색한 호칭이 있으니 바로 ‘작가님’이다. 작가님이라 불리울 때마다 부끄럽고 거북해서 미친다. 요즘 인터넷 용어로 손발이 마구 오글거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작가님이라 불리우는 게 영 적합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전 미주지역 한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웹사이트에 내 칼럼이 있다. 2006년에 개설했는데 장편소설, 단편소설, 넌픽션, 수필 등 그동안 올린 글이 수백 편이니까. 그 사이트의 수십 명 칼럼니스트 중 내 글이 조회 수가 제일 높고 댓글 수도 제일 많다. 글마다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는데 그들 독자의 나에 대한 호칭이 작가님인 것이다.
작가님이라. 생각해 본다. 내가 과연 작가(作家)인가. 작품을 만들어내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니까 작가이긴 하다. 그러나 앞에서 얘기했듯 나는 이 호칭이 참 불편하고 어색하다. 왜냐면 나는 작가라 불리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에. 내가 작가면 정말이지 그건 이 땅의 모든 작가를 모독하는 것이다. 겸손이 아니다. 겸손이라니. 나는 절대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자랑질이 심한 사람인데.
한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자신의 혼을 바친다고 한다. 자료조사와 현장답사, 구상. 그리고 수백 번, 수천 번의 퇴고를 거쳐 한 작품을 완성한다. 자료조사와 구상만 10년 이상씩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내 막내동생도 오랫동안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썼었는데 한 편의 칼럼을 위해 수십 편의 자료를 찾아보고 첨삭, 또 첨삭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그렇게 온갖 정성과 열성을 다해 퇴고해 놓고도 막상 신문에 실린 글을 대하면 어딘가 미진하다는 생각 때문에 늘 괴롭단다.
작가 김훈이 충무공 이순신을 재조명한 ‘칼의 노래’란 역사소설을 쓸 때 도입 부문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란 문장을 놓고 깊은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꽃은’과 ‘꽃이’가 주는 단 한 글자의 미묘한 차이와 느낌 때문에. 그렇게 산고(産苦)의 고통을 거쳐 작품을 내는 작가들. 그들을 나는 백 분의 일도, 아니 천분의 일도 못 따라간다. 나는 작품을 위해 고뇌하지도, 사색하지도, 노력하지도 않는다. 내 성격상 그런 건 맞지 않는다. 소재만 정해지면 앉은 자리에서 그냥 드르륵, 일기 쓰듯 쉽게, 빨리 쓴다. 그래서 내 글은 한 할배의 표현대로 깊이도 철학도 교훈도 없으며 두어 번 후루룩 빨아들이면 없어지는 컵라면처럼, 일회용 커피처럼 경박하고 가볍고 유치하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내 이름으로 책을 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작의 고통 없이 쓴 글을 책으로 엮어 두고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작의 고통이 없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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