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
한 할배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늙느라고 그런지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고, 알레르기성인지 감기 기운도 있고 시어머니도 돌아가시는 등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좀 소원했더니 안 죽고 살아 있나 궁금했는지 문자로 내 안부를 챙기는 것이다. 별로 길지도 않은 할배의 문자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연계들하고만 놀지 말고 우리 할배들도 잊지 말고 챙겨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해야 했다. ‘연계’가 뭔가 싶어서. 그러다가 할배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내고 한참을 웃었다. 할배가 말한 것은 ‘영계’였다, 연계가 아니고. 잘못친 게 아니었다. 실수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연계라는 단어가 두 군데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면 잘못 칠 수 있지. 할배는 명백하게 영계란 맞춤법을 모른 거였다.
예전과 같았으면 눈쌀이 저절로 찌푸려졌을 거다. 한국에서 산 기간보다 미국에서 산 기간이 더 길다고 해도 명색에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의 맞춤법을 모를 수 있을까, 한숨을 내쉬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숨에 전화해서 ‘무식이 뚝뚝 흘러요, 흘러’하고 시비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젠가 이 할배가 ‘과수원’을 ‘가수원’으로 잘못 쓴 적 있길래 (위에도 말했지만, 오타인지 맞춤법을 몰라서인지는 금방 안다)당장 전화해서 ‘아무리 똥통 학교를 나왔다 해도 이 정도의 글자는 다 안다’ 마구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왜 그리 견딜 수 없었던지 맞춤법 틀리는 남자들을. 그건 ‘가방끈이 짧고 길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신문만 좀 주의 기울여 읽어도 얼마든지 터득할 수 있는 글자들을 틀릴 정도라면 매사에 얼마나 무성의하고 무신경하고 태만할까 한심하게 여겼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예민했던 것이 또 있었다. 집안이 엉망인 사람들이었다. 처음 만나 좋은 느낌을 가졌다가도 집에 한 번 가 보고 실망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기수였었던지. 비싼 장신구들과 의상들로 치장해서 외모는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들이었는데, 언변도 뛰어나서 대단하다 싶던 사람들이었는데 집안 꼴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고물상도 아니고, 금방 이사 나갈 집도 아닌,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집에서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을까 할 정도의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았던 것이다. 나 같으면 잠결에 해도 단숨에 해치울 일들이었다. 오죽하면 나중에 은퇴하고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리정돈 컨설팅 비즈니스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다 했겠나.
세월이 흘러서일 거다. 나이가 들어서일 거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내가 변해서일 거다. 지금은 별로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다.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지고 이해가 된다. 내가 목숨을 걸었던 것들이, 청소, 맞춤법 등이 사실은 살아가는 데는 별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각각 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에 옳고 그르다고 따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군더기라고는 없이 말끔한 내 집과 고물상 같은 이웃집은 사는 방식이 다를 뿐 누가 더 낫다고 흑과 백으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대신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넘겼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서 3분 거리에 큰 한국마켓이 있다. 정말로 없는 게 없는. 이 한국마켓이 있는 게 참 고맙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식품들을 싼 가격에 마음 놓고 살 수 있어서. 이 마켓이 없었으면 내 식생활이 얼마나 빈약했을까. 더구나 이민 생활이 오래되면서 귀소본능의 욕구가 되살아나는지 한국음식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인데. 그리고 내 단골식당 ‘민츠’. 이 식당을 내 집처럼 맘 편히 드나들 수 있다는 게 또 무척 고맙다. 청결하고 정갈하고 분위기 좋고 음식 맛있어야 친절해야 하는 까다로운 내 요구를 백 프로 충족시켜주는 식당이기에.
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운 차림으로 마음 놓고 뒹굴거릴 수 있는 자유가 고맙고 가끔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게 고맙고 이른 아침 강아지를 데리고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맞으며 걸을 수 있는 여유도 고맙고 배고플 때 먹는 라면 한 그릇도 고맙고 만날 때마다 지지고 볶으며 싸워도 며칠 지나면 뭐하냐하고 문자해 주는 할배들이 있는 것도 고맙다.
예전에는 그냥 내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평범한 것들이 그저 고맙다. 고마운 게 많아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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